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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로/텟츠바]달콤살벌한 당신 (반야로 전력)

굉이 2017. 1. 14. 23:02

너무 조용하다.

텟페이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렸다. 굳이 따지자면 한껏 쫄아 있는 상태였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보다 험악해 보이는 정도가 배로 늘었다는 것이 웃지 못 할 사실이었다. 여하간 텟페이는 바짝 얼어있는 상태였다. 이유인즉슨 그의 옆에서 보폭을 맞추며 걷고 있는 선배의 태도 되시겠다.

왜 그래, 텟페이. 뭐 살 거 있어?”

, 아뇨.”

그럼 얼른 가자. 추우니까.”

대사만 보면 꽤나 상냥하다만, 대화를 나누는 데 있어 비언어적 요소의 존재감은 아주 크다. 츠바사의 표정은 냉랭한 데다 말투는 조용했다. 그가 불쾌감을 드러내는 대상이 텟페이가 아니란 사실에 감사해야 할 정도로 무서웠다. 텟페이는 걸음을 마저 옮기며 제 선배들을 떠올렸다. 실상, 블레이스트는 대체 어쩌다 이런 멤버들이 모인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중구난방에 뒤죽박죽이었으나 오늘 하나의 공통점을 또 하나 찾았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면 조용해진다.

쉽게 흥분하는 데다 늘 하이텐션이어서 방방 뛰어다니곤 하는 야마토도, 단순한 구석이 있어 금방 목소리를 높이고 때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마저 불사하는 소스케도, 사뭇 가볍게 굴며 생글생글, 느물거리는 태도를 고수하는 츠바사도.

별 거 아니네. 기껏해야 어린애들이잖아?’

정말로 그렇게만 여겼다면, 굳이 더러운 술수에 손대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들의 태도엔 이가 갈렸다. 일전, 야마토가 임시보컬로서 들어와 참가했던 페스티벌 회장의 뒤에서 나온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상태였다. 절로 이가 갈렸다. 에덴 외의 몇 라이브하우스에서도 요청이 들어왔음에 기뻐했던 것도 잠시였다. 에덴에서도 무례하고 불쾌한 녀석들은 몇 만나봤지만, 이렇게 대놓고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며 뒷공작까지 일삼는 놈들은 처음이었다. 제 입으로 요령이 좋다느니, 판을 짠다느니 하며 일을 꾸미곤 하던 츠바사의 행위와는 질적으로 전혀 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츠바사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텟페이 자신 또한 물론 매우 화가 났다. 음악엔 진지하다 못해 바보 같아지기 까지 하는 소스케의 반응도, 자신이 마음먹은 것에 관해서는 무식하리만치 또렷하게 돌진하는 야마토의 반응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명예스런 패배를 선언당한 직후 본, 츠바사의 그 얼굴은.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았지.”

?”

아니, 츠바사 선배가 너무 살벌해서요. 제가 화났던 것까지 잠깐 잊을 정도였지 뭡니까.”

, 선배가 어디서 그 녀석들 죽이고 오겠다고 할까봐 겁먹었다니까요. 텟페이는 계단을 올라가며 나는 둔탁한 소리에 맞춰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반쯤은 진담이었고 반쯤은 농담이었다. 그 정도로 츠바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눈동자엔 생경한 빛이 들었었다. 잘그락잘그락 열쇠를 찾던 텟페이는 츠바사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고개를 돌렸다. 흐음, 나지막한 침음을 흘리며 츠바사가 입가를 쓸고 있었다.

그래그것도 나쁘지 않네.”

, 선배?”

신상 정도야 적당히 조사해보면 금방 나올 테고.”

문제는 밑밥과 실행과 알리바이인가. 꽤나 진지한 어조로 츠바사가 중얼거렸다. 농담으로 재잘댄 텟페이가 당황할 차례였다.

선배, 무슨 소립니까. 농담이죠?”

글쎄시도할 가치는 있지 않을까?”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츠바사가 텟페이를 올려다보았다. 텟페이의 손에서 차마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열쇠가 짤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벚꽃빛 머리카락과 에메랄드와 같은 눈동자는 여전히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빛깔일 텐데, 지금 츠바사의 표정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으리만치 이질적이었다. 한편으론 지독하게 어울린다고 느낄 정도로.

오늘은 이만 가볼게. 푹 쉬어, 텟페이.”

집 앞까지 같이 따라왔으면서, 츠바사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 철제 계단을 밟는 소리가 텟페이보다 가벼웠다. 그러나 그 작은 어깨가 알 수 없는 것에 잔뜩 짓눌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텟페이에겐 그랬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정말 츠바사가 무슨 짓을 저지를 요량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그래서 텟페이는 황급히 소리쳤다.

라면!!!!!”

?”

라면 먹고 가, 가실래요!?”

아 젠장, 삑사리 났어. 텟페이는 뒤늦게 치솟는 부끄러움에 황급히 입가를 가리며 시선을 내렸다. 무진장 쪽팔렸다. 일단 막아야한다, 지금 츠바사를 혼자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 싶긴 했지만.

라면 먹고 가실래요, 라니. 이게 뭐야. 게다가 이 밤중에 무슨 놈의 라면이냐. 좀 더 그럴듯한 핑계는 없었냐, 시라유키 텟페이! 급작스레 기온이 내려간 날씨에 볼이 얼어있었건만, 그것과는 다른 이유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는 츠바사의 침묵에 점점 시선이 내려가 눈이 묻은 제 발치만 내려다보는 와중, 조용한 물음이 들렸다.

텟페이. 요즘 세간에서 라면 먹고 가겠냐는 질문이 무슨 의미로 쓰이는 진 알고 하는 말이야?”

?”

, 모르는구나. 혹시나 하고 기대하긴 했는데, 역시 텟페이랄지.”

뭐어. 이건 이거대로 귀여우니까 봐줄까. 그렇게 덧붙이는 츠바사의 말엔 어느덧 웃음기가 담겨있었다. 선배가 날 속였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텟페이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다시금 계단을 통통 걸어올라오는 츠바사의 얼굴은 방금 전과는 달리 환했다.

속기도 잘 속고 말이야. 아무렴 내가 정말 사람을 죽이기라도 하겠어?”

그건 아니지만.”

너무하네, 텟페이는~ 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없는 거 아냐?”

흑흑, 상처받았어. 이번엔 명백히 꾸며냈음이 티 나는 거짓울음에 언제 그랬냐는 듯 텟페이의 표정이 식었다. 그가 질린 눈을 하거나 말거나 츠바사는 태연하게 허리를 숙여 떨어진 열쇠를 줍고, 제가 문을 열었다. 찰칵, 잠금이 열리는 소리에 집주인보다 먼저 손잡이를 잡은 츠바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말은 고맙지만 라면은 됐어, 텟페이.”

, . 라면은, , 그렇죠.”

대신 텟페이를 줬음 좋겠는데.”

줄 거지? 입꼬리를 웃는 츠바사의 볼이 빨갛게 얼어있었다. 에메랄드빛 눈은 장난기와 동시에 미묘한 열기로 반짝였다. 텟페이는 후, 크게 날숨을 내쉬고는 여전히 시뻘건 얼굴로 성큼성큼 츠바사에게 다가갔다. 문을 열어 츠바사를 먼저 제 집안으로 밀어 넣고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오늘 자고 가실 겁니까?”

안 돼?”

다시 한 번 나지막한 한숨이, 이번엔 좁은 현관에서 울렸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츠바사의 반문에 텟페이의 반응은 웃음이 나오리만치 솔직했다. 찰칵, 문이 잠겼다.

안 될 리가요.”

츠바사는 환하게 웃으며 뜨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텟페이의 목을 끌어안았다.

 

***

 

있잖아! 그거 들었어?!”

, 멍청아. 말을 해야 알 것 아냐!!”

방금 마스터한테 들었는데, , 우리 저번에 한 번 나가서 듀얼 했던 그 A거리의 라이브 하우스 말이야.”

, 물론 기억합니다. 그 기분 나쁜 녀석들이랑 만났던 곳이죠.”

응응, 거기! 근데 그 때 그 녀석들, 라이브하우스에서 쫓겨났대.”

하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도 들었어. 야마토랑 같이 있었는데, 듣자하니 이전에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많았나봐. 그런 와중에 뭔가 심각한 일이 터져서, 거기 마스터는 두 번 다시 안 받아줄 거라고 쫓아냈대.”

넌 또 왜 여기 있어?!”

매니저니까!”

그런데 뭐 사방팔방 얘기가 다 퍼져서 말이야. 그 전에 피해를 본 사람들도 많고. 아마, 계속 밴드를 하기엔 힘들 것 같더라.”

진짜입니까.”

경찰조사를 받는단 소리도 있던데.”

진짜인지 아닌지, 난데없는 소식에 블레이스트 멤버+매니저가 수근수근 입방아를 찧었다. 어리벙벙한 기분으로 목을 쓸던 텟페이가, 문득 츠바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기묘할 정도로 말이 별로 없이 가만히 듣고 있던 츠바사가 눈이 마주치자 쉿,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역시 무서운 사람이야.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어쩐지 츠바사를 꽉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꾹 내리누르며, 텟페이는 귓가가 빨개진 채로 슬쩍 시선을 피했다. 오늘도 날이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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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로 전력 60분

주제: 라이브 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