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카레오 필연 (네임버스AU) 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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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오우 츠카사는 네이머였다.
누군가는 로맨틱하다고도 여길 법했지만 갓 태어난 아들의 심장 위쪽에 새겨진 흐릿한 자국을 본 스오우 가의 주인들은 먼저 걱정을 했다. 운명의 상대, 신체부위에 적힌 그 이름(Name)은 극히 소수의 인간이 부여받는다는 특별한 것이었으나 부모 된 입장에서 실상 기껍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일반적인 서민 가정도 아니니, 경우에 따라선 정략결혼이 필요할 수도 있을 텐데. 혹여 상대가 좋지 않은 사람이면 어쩌지. 그 상대의 운명의 사람은 따로 있다거나 하면 어쩌지. 이후에 스스로가 원해서 네임 제거 수술을 받게 된다고 해도 많이 고통스럽다던데. 그 모든 것들에 앞서 우리 아이가, 츠카사가 상처를 받으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워서.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츠카사가 지닌 네임은 그가 점점 키가 크고 철이 들면서도 여전히 흐릿한 상태 그대로였다. 태어날 때와 비교하여 조금도 또렷해지지 않은 네임은 기를 쓰고 읽어보려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츠카사 본인도 제 네임에 대한 관심이 식은 뒤였다.
개중에는 네이머라 한들 평생 몸에 새겨진 네임이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나 심지어는 태어나지도 않은 상대가 네임의 주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였다. 네이머의 존재 자체가 드물기도 했다. 이런 저런 경우를 다 따지고 보면, 같은 세대에 서로의 운명을 만나 행복해진 정석적인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여 자신도 그런 케이스일 수도 있겠거니, 하며 눈앞의 현실에 충실하게 살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스오우 츠카사는 흐릿한 네임을 왼쪽 가슴에 머금은 채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치열한 경쟁과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동경하던 유닛에 입단하고,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나름대로 뿌듯하게 자신의 성장을 추구하는 일상을 보냈다. 저보다 훌쩍 앞에 가 있는 선배들을 쫓아 달리는 것은 쉽지 않았고, 이런 저런 사건사고로 마냥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즐겁고 또 평온한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봄이, 여름이 지나고 바람이 점차로 서늘해지던 그 계절의 어디쯤.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던 스오우 츠카사는 문득 고개를 들어 마주한 거울 속에서 제 왼쪽 가슴 위에 새겨진 네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네임은 자신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글씨체로, 세련됐으면서도 통통 튀는 듯 이상한 느낌으로, 이제껏 내내 흐릿하게 뭉그러져 있던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렷하게.
‘츠키나가 레오’라 적혀있었다.
***
“수상한 사람일까요, 쫓아내도록 하죠.”
자못 유쾌하게 재잘대면서도 이유 없이 점차 속도를 더해가는 심장박동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처음 보는 작은 뒷모습은 양손 가득 색색의 연필을 쥐고 바닥에, 벽에 무언가를 잔뜩 써내려가고 있었다. 신체적 여건만 허락했다면 천장에도 휘갈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경쾌하게, 거침없이, 그리고 필사적으로.
분명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저 작은 등을 감싸 안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있었다. 생소하다 못해 기괴했다. 이건 무언가 잘못됐다. 스오우 가의 츠카사는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자가 아니었다. 하여, 부러 고개를 저어 알 수 없는 감각을 어떻게든 털어내려는 찰나였다.
“여전히 예전이랑 변함없네, 왕님?”
“…왕님?”
“응? 아, 나루! 오오, 릿츠에 세나도 있어!”
그리고 돌아보는 얼굴이 시야에 담기고, 신록의 빛이 저를 스쳐지나가는 그 순간.
아.
츠카사는 왼쪽 가슴께가 타들어갈 것만 같은 감각에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그러쥐었다. 심장의 위쪽,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네임. 그 주인이 누군지 이제껏 알 수 없었던, 그러나 이제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스오우 츠카사는 확신했다. 난생 처음 보는 인물이었음에도 당연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본능과도 같았다. 미친 듯이 쿵쿵 뛰어대는 심장과 달아오르는 네임 자욱이 열렬하게 소리쳤다. 저 자가 츠키나가 레오다. 저 자가, 이 네임의 주인이다. 스오우 츠카사의 네임이 바로, 저 사람이라고. 운명의 네임이 있는 자리가 금방이라도 데일 것처럼 아프도록 뜨거웠다. 주체할 수 없는 환희가 멋대로 휘몰아쳤다.
“어라, 모르는 녀석이 있네.”
아, 그러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잖아.”
…아아, 그렇구나.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으나 츠카사는 깨달았다.
츠키나가 레오에게는 저의 네임이 없다.
***
……드물긴 하지만 전례가 없지도 않다. 보통은 쌍방이 서로의 네임을 가지지만, 오직 한 쪽만이 상대의 네임을 가진 경우도 있다 하였다. 네임을 가진 자는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고 멋대로 뛰어대는 심장의 고동에 어쩔 줄을 모르나 정작 그 상대는 저와 같이 인식하지 못하는 노네임(No-name)인, 얄궂은 운명의 장난. 츠카사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네임을 가지고 있던 선천적 네이머인 것처럼, 노네임이었다가 차후 네임이 발현되는 후천적 네이머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조차도 서로를 만난 순간에는 바로 알게 되는 것이 정설이라고들 했다. 그렇게, 네이머의 운명의 상대는 평생 노네임이거나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기에 선천적 네이머가 네임 제거 수술을 받았다는 사례도 몇 있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 따위에 기대기에 츠카사는 지나치게 철이 일찍 든 도련님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친애를 바탕으로 한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기를. 그가 저의 이름을 알아주기를. 기억하고 불러주기를 바라는 것이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나. 심지어 제가 고대하고 동경하던 유닛의 리더, 제가 모셔야 할 왕이라는데 이 작은 욕심의 어디가 이상하단 말인가.
“신입, 너, 어…이름이 뭐였지? 미안, 들었는데 잊어버렸어.”
“네?”
“나,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건 기억하지 않는 주의거든!”
그 작은 소망마저 비웃듯, 운명이라는 이름을 능동적으로 거절하기라도 하듯 츠키나가 레오는 스오우 츠카사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함께 무대에 서지 않는다.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기억하지도 못한다. 저에게는 관심도 없다. 눈앞에 대고 몇 번을 부르짖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기억할 가치조차 없다 한다. 너무도 무심하게, 아무런 변화도 없이 말간 눈동자를 자연스럽게 돌릴 뿐이다. 다른 선배들의 이름은 꼬박꼬박 불러주면서, 저에게는 언제고 이름을 들을 기회가 있으니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작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제가, 신참이라, Knights의 방식에 녹아들지 못한 건가요?”
그저 왕의 손바닥 위에서 손쉬운 패로서 놀아날 뿐, 기사로서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다. 오선지와 음표가 뒤죽박죽 섞여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그의 환상의 일면에 결코 발을 들일 수도 없다. 단 한 칸도 내어주질 않는다.
……나는, 이제껏 평생을 당신의 이름을 품은 채로 살아왔는데.
스오우 츠카사가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지독한 무력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부당한 통치, 자비 없는 왕의 폭정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
츠키나가 레오는 네이머의 아들이었다.
그의 부모는 낭만적인 네이머의 정석으로 묘사될법한, 참으로 이상적인 부부였다. 가치관이 비슷하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운명의 동반자로서 여생을 함께 보낼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행복하다고 해서 주변의 다른 사람까지 모두 다 당연히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가치관도 사고방식도 비슷하여 너무나 죽이 잘 맞는 부부, 그들이 품어온 가치와 삶의 양식을 사랑하는 양친은 어디서 주워오기라도 한 것 마냥 전혀 다른 방향으로 툭 튀어나가 모난 돌만 같은 아들을 꺼렸다. 처음에는 조금 삐걱대는 정도에 그쳤으나, 갈등을 피하고자 부러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를 두던 중, 어느 순간부터 부모와 아들은 몇 번의 대화로 메울 수 없을 만큼 골이 깊어진 지 오래였다.
네이머의 존재가 그리 보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나의 표본을 가까이서 평생을 접한 츠키나가 레오는 생각했다. 운명이라는 이름은 옛날이야기처럼 당연하게 모두가 행복한 이야기가 될 수는 없는 거구나.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가 항상 보장되는 건 아니구나, 하고.
거기서 탄생한 것은 무의식적인 거부감이었다. 네이머가 될 확률이 적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도 선천적으로 노네임이었던 자신에게 뒤늦게 네임이 생길 확률은 더더욱 요원하다는 걸 알면서도 레오는 저에게는 평생 네임 따위가 없기를 바랐다. 제 양친의 몸에 있는 것처럼 제 몸 어딘가에 타인의 이름이, 제 의사와는 관계없이 새겨져 있으리라 생각하면 거추장스럽다 못해 끔찍했다.
아, 세상에 이렇게나 재밌는 것들이 많고 눈부신 뮤즈가 많은데, 어떻게 한 사람의 이름만을 새기고 살아간단 말이야. 즐거운 합리화는 벌거벗은 왕을 기꺼이 자유로운 운명으로 만들어주었다. 저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물론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함부로 손대기 어려울 만큼 사랑스러웠지만 저 자신이 어떤 한 존재에게 다른 온도의 관계로 매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제비꽃을 보았을 때 츠키나가 레오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저 신입은, 껄끄러웠다. 연유도 알 수 없이 그냥 싫었다. 나름대로 귀여운 맛은 있었지만 도무지 사랑스럽다 여길 수 없었다.
“스오우 츠카사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만족하실 겁니까?!”
“너처럼 조그마한 신입을 상대할 여유는 없는데?”
의식에서 아이를 차단하는 것은 쉬웠다. 그는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었으니까. 제 우주에, 악상에 취하면 모든 것을 뇌리에서 배제해버릴 수 있었으니까. 천재의 영감은 약간의 불순한 의도가 섞여들었다고 할지라도 그를 쉽사리 지루한 현실세계에서 떠나게 해주었다. …실제로 그 이름에선 어떤 영감도 솟아나지 않았으니까, 굳이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저 같은 건 같은 유닛의 동료라고 인정해주시지 않는 건가요? 하찮은 존재라고?”
“에, 아무도 그런 말은 안 했는데.”
어렴풋이 현실로 돌아와 눈앞에 선 아이의 얼굴을 자각하자면, 이제는 저에게 반발하는 눈을 보며 도리어 안심했던 것 같다. 저에게 어울리는 건 이쪽이었으니까. 츠키나가 레오에게는 이러한 시선이 보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그럼 자기소개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겨우 돌아오신 우리 Knights의 왕이시여.”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끝에서,
“Repeat after me. 제 이름은-”
마침내 똑바로 마주한 아이는.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
……날개뼈 부근이, 타들어가듯이 아팠다.